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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위치 : 홈 > 뿌리찾기 > 밀성(양)박씨 유래
밀성대군사실
밀성대군 언침은 신라 경명왕(시조의 29세손)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밀성대군에 봉군 되었다.
밀성대군부에 있는 이궁대 풍류현 세루정은 신라왕들이 거동하여 놀던 곳이라 한다. 이궁대는 본래 신라의 어진 사람들이 백성을 덕화함으로 동경(경주의 옛지명)이 태평성사에 젖었으니 이궁대, 풍류현, 세루정의 이름이 당시의 풍속과 민요에서 나온 것이다.
대군이 밀성으로 봉군된 후 자손이 살은지 천년에 지파가 번연하고 세상에 서 이름난 재상과 선비가 많이 탄생하였고 일국에 거족이 되었다. 대군이 아우 칠인과 같이 봉군된 사실은 신라사기에 실려서 천년 뒤에도 형제간 의 동근의 義가 밝고 깊다.
서기 1922년 팔도 성손들이 순의하여 원덕사를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에 세우고 대군의 후예인 모든중조, 즉 12중조를 배향하였다. 그후 4년 뒤 을축에 또 단을 밀양영남루 언덕에 모으고 또 그 후 2년 뒤 정묘년에 제단을 밀양무안리에 모으고 삼한벽공도대장군 휘 욱과 요동독포사 란을 아울러 3대조를 제사하니 이곳을 경덕재만운각유경 이라고 한다. 즉 지금의 밀성재이다.
또 밀성박씨는 전국박씨의 종가이며 밀성 박씨에서도 태사공파(휘 언부)의 주손인 은산부원군(휘 영균)파가 대종손이다.


本貫의 由來(본관의 유래)

밀성(밀양)박씨는 신라시조왕 혁거세의 29세손 경명왕의 8왕자중 장자인 휘 언침이 밀성의 성주인 밀성대군으로 봉작되었기에 그 자손의 본관을 밀성이라 하였다.
(밀성의 지명이 밀양으로 바뀌면서 본관을 밀성 또는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의 지명에 관한 내역
밀양은 원래 삼한시대에 변한(弁韓)의 일부로 가락국에 속하였으며 신라 법 흥왕(제23대왕 재위기간 514~540)때 신라에 병합되어 추화군이 되었다가 757년 경덕왕16년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고려시대 성종4년(995년) 전국을 4도호부 10도로 구분할때 경주와 함께 영동도에 속했으며, 밀성군의 격을 높여 "밀주군"으로 개칭하였다.
또, 현종9년(1018) "밀성군사"로 충열왕 원년(1275년) 조천의 반란으로 계림부에 속하다가 후에 "밀성현"으로 승격되었으며 충열왕11년(1285년) "밀성군"으로 승격되었다가 공양왕 2년(1390)"밀양부"로 승격되었다.
조선시대 태조원년(1392년)"밀성군"으로 칭하다 태조3년(1394년) "밀성부" 로 다시 환원되었으며 태종원년(1401) "밀성군"으로 되었다가 태종15년 (1415) 주민의 호수를 기준하여 천호 이상의 고을를 모두 도호부로 만들 게 되었는데 이때 "밀양도호부"로 되었다. 고종32년(1895년) 칙령 제98 호에 의거 23부제 실시로 소지역주의를 채택함에 따라 도 이하의 부, 목, 군, 현 도 폐지되고 전국이 36군으로 개편될 때 "대구부 밀양군(시지역은 부내면)으로 되었다.
고종 33년(1896년) 칙령 제36호로 경상남도 밀양군으로 개칭하였다.